김동호 목사 “교회가 죽어야 기독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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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김동호 목사 “교회가 죽어야 기독교가 산다”


김동호 목사(62·높은뜻연합선교회)는 요즘 기독교 내 최대 이슈로 떠오른 ‘교회 세습 반대’ 운동의 중심에 서 있다. 2000년부터 ‘담임목사직 세습반대 연대기구’에서 활동하며 수시로 세습 반대를 설교해왔다. 지난달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회 세습은 범죄”라고까지 말하며 세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이니만큼 확신도 강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만난 그는 의외였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표정은 어두웠다. 정연한 논리와 군더더기 없는 말 밑바닥에 불편함이 있었다. “참담하다” “부끄럽다”는 말을 자주 했다.

“목사인 내가 교계(敎界) 신문도 아니고 일반 신문에 나와 내부 치부를 고발하는 상황이 참담하다. 저 목사 왜 저래? 하겠지만…. (교회) 세습은 안 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바깥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 인터뷰에 응한 건 외부 힘을 빌려서라도, 다만 몇 사람이라도 옳고 그른 게 무엇인지 분별력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인터뷰는 4일 오후 서울 명동 김 목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세습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세습에도 상식이라는 게 있다. 교회 안 시선도 중요하지만 교회 밖도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은 ‘세습’ 하면 북한을 떠올린다. 교회 밖 사람들은 속된 말로 영적(靈的) 고객이 될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교회가 미개한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데 이래서야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는가. 그리고 (교회가) 힘들고 안 좋은 상태면 물려주겠는가. 크고 힘이 있으니까 세습을 하는 거다. 지금 개신교 내 세습은 가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남들이 다 가고 싶은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한마디로 교회를 사유화하는 것이다.”

―상황이 어느 정도인가.

“12년 전 광림교회가 세습을 했을 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비판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광림교회 이전에는 눈치도 보고 그랬는데 이후 와르르 무너졌다. 지금은 신도수가 200∼300명인 교회도 세습을 당연시 여긴다. 오죽하면 신학생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목사면 성골, 장로면 진골, 이도저도 아니면 잡골’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세습은 일종의 문화 아닐까.

“물론 대기업도 세습을 한다. 그렇다고 광고하는 거 봤나(지난달 1일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신문광고를 통해 세습을 지지한 것을 일컫는다). 세상이 숨어하는 일을 교회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다. 그러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 시기와 질투심이 가득한 소인배라고 한다.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정작 세습이 이뤄진 교회는 별 잡음이 없다. 문제없다는 것 아닌가.

“겉으로 그렇게 보여도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해당 교회는 문제없다 해도 기독교계 전체에 폐를 끼치고 있다. 세습한 대형 교회는 안 무너지지만 다른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다. 개척 교회 목사들이 다 죽어나가고 있다. 기독교 이미지가 나빠져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사고는 대형 교회가 치고 피해는 작은 교회들이 보고 있다.”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세습이 교회를 죽이고 있다. 나는 역병(전염병)이라고 생각한다. 콜레라 걸려 다 죽어가듯 한국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중에서 유독 기독교 신자 수만 급격히 줄고 있다. 길 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라, 세습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기독교는 세습 문제만 해결하면 다 되는가.

“내 목적은 세습을 ‘불편하게’ 만들자는 거다. 최소한 교인들 사이에서만이라도 ‘(세습은) 안 된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교회는 커진 힘을 겁 없이 행사하려 한다. 그리고 신도들을 가르치려 한다. 막무가내라고 생각될 정도다. 이게 종교인가, 맹신이지.”

―종교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다. 자기들끼리 해결해야 되는 문제라는 생각도 있고….

“나는 신도들이 언론사에 쳐들어가 항의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부터 교회가 죽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억울해도 세상이 뭐라고 하는지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 지금 교회는 교만하다. 자기들 주장과 다르면 무조건 ‘이단’이라고 한다. 어느 안티기독교 사이트에서 ‘한국 교회는 모여라 돈내라 집짓자 딱 세 마디’라고 했다. 기독교가 비탈에서 미끄러지고 있는데 속도가 빨라져 추락 수준이다. 교회가 사명을 잊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이 뭔가.

그는 답 대신 기자에게 되물었다.

“기독교가 초창기 가장 기여한 사회적 공헌이 뭐라고 생각하나?”

“…….”

“나는 계급이라는 불공정한 룰을 깬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주교를 포함해 만인평등을 가르쳤다. 내가 목회를 시작한 곳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승동교회였다. 120여 년 전 백정들이 많이 다닌 교회다. 백정이 최초로 장로가 됐다. 교회 안에서는 왕손이나 백정이나 평등했다. 일제강점기 때 국채 보상운동도 교회가 나서서 했다. ‘3·1운동’으로 투옥된 사람 중에는 기독교 신자 수가 다른 종교 합친 것보다 많다. ‘크리스천=애국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돈도 많고 힘도 커졌는데 건물만 더 크게 더 크게 세우는 데 혈안이 되었다.”

김 목사는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만큼 잘사는 나라가 드물다. 하지만 물질이 풍요롭다고 정말 잘사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진짜 잘사는 것인지 보여줄 타이밍인데 교회가 못하고 있다. 미칠 노릇”이라고 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교회가 죽어야 기독교가 산다. 얼마 전에 미국 다녀왔는데 교회가 창고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그걸 너무 자랑스러워 했다. 한국처럼 사치스러운 교회를 본 적이 없다. 5성급 호텔 수준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 팔아 사업하는데 한국 교회는 남들 돈 당겨서 자기 집 짓고 있다.”

―페이스북 활동도 열심인데 요즘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시대에 꼭 공간이 필요한가.

“내가 페이스북을 해보니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생기더라. ‘세습반대’ 주장 글은 12만 명이 봤다. 내 글을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사람이 매일 4만5000명 정도 된다. 하지만 교회를 대신할 수는 없다. 교회가 건강하면 그처럼 매력적인 공동체가 없다. 서로 만나 예배하고 찬양하며 공감하고 감동하면서 누리는 환희와 교류는 비교할 데가 없다. 사람들이 (목사의) 설교 때문에 (교회) 오는 게 아니다. 빈부귀천 없이 모두 형제라는 공감을 느끼기 위해서 오는 거다. 그걸 페이스북이 대신할 수는 없다.”

어렸을 적 가난에 상처받았던 그는 내성적이고 열등감도 심했다고 한다.

“교회가 아니었다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분노와 비난만 퍼붓고 있었을 거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청량리 중앙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비로소 나라는 사람도 남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남루한 내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끌어안아 주셨던 여선생님이 내 인생을 바꿨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도 교회에서 깨달았다. 나는 교회를 통해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건강한 교회는 그렇게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김 목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개혁적인 말과 행동으로 기독교 내에 긴장을 불러왔다. 지난 8월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65세에 은퇴할 것”이라며 “은퇴 후에는 원로목사를 포함해 교회 재정으로 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굳이 은퇴선언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나는 목사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이라고 하면 속된 것이고, 성직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직업이 왜 속된가, 일이 다를 뿐이지 다 똑같다. 나는 내 일이 좋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최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직업인이니까 은퇴는 당연한 거다. 3년 뒤면 은퇴한다. 페이스북도 은퇴 준비의 일환이다. 새벽에 일어나 설교문을 올린다. A4용지 한 장에서 한 장 반 정도를 매일 쓴다.”

―목사의 소명은 무엇인가.

“세상은 하나님만의 식(式)이 있다. 철학 또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목사는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뜻이 하늘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라고 주기도문에 나와 있지 않은가. 목사는 하나님의 뜻과 식을 전파하는 메신저이다.”

―세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그렇다.”

―평소 종교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해왔다.

“내가 다른 사람 세금 덕택에 살고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종교인 이전에 이 나라 국민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너 잘났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이 세금 내는 게 잘나서 내나, (종교인 과세는) 상식에 관한 문제다.”

―의도했든 안 했든 지금 투사가 됐다.

“원했던 일은 아니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많아지니 영웅심리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무섭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는 “지난달 25일 감리교단이 세습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감리교단 내 가장 큰 교회들이 세습을 시작했는데 그 안에서 그걸 뒤집었다. 내 최종 목표는 모든 교단이 세습금지법을 만드는 것이지만 세습 반대 운동은 네거티브 운동이다. 교회 본연의 모습을 찾는 포지티브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김동호 목사는 ::

장로회 신학대 기독교교육과, 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 신학과를 졸업했다. 매코믹신학교 목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승동교회 담임목사, 영락교회 교육담당 협동목사, 동안교회 담임목사를 지냈다. 동안교회(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목사 시절엔 목사 장로 신임투표를 주장해 화제를 모았으며 부임 때 1500여 명이던 신자수를 10년 만에 4000여 명으로 늘린 뒤 평생이 보장되는 대형 교회 담임 목사직을 스스로 사임하고 교회 개척에 나섰다. 2001년 말 숭의여고 강당을 빌려 주말 예배를 보는 식으로 ‘높은뜻숭의교회’를 개척해 출석교인이 5000여 명을 넘기자 2008년 교회를 해체해 4개로 분리, 4명의 목사들에게 맡겼다. 교회 건축헌금으로 200억 원이 모였으나 “교회를 짓기보다 다른 것에 할 일이 많다”며 2008년 탈북자들만을 고용하는 공장 등을 세웠다. 국내 사회적 기업 1호로 탈북자들의 자활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2012.10.8(월)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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