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를 위한 변명-혁신과 융합시대

ㆍ출판사 : 브라운힐
ㆍ발행일 : 2012-01-10 
ㆍ규   격 : 신국판 | 254쪽 
ㆍ정   가 : 12,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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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소개


평화시대 개막 결국 종교가 문제다!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합과 일치에 이르는  비전 제시!

 

 

종교의 이중성 집중 분석, 대안 제시

 

2006년 미국 정보방위센터(CDI)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 39개 분쟁 지역 가운데 종교가 배경이 된 곳은 절반에 가까운 16개 지역이다. 특히 기독교가‘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200여 년에 걸쳐 전개한 십자군 전쟁은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광신에 따른 야만행위’로 평가할 정도로 인류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다. 

 

종교의 가장 큰 이율배반은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성이다. 그것은 자기 종교에만 구원이 있고, 신의 은총이 함께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특히 자기 종교만 진리를 가졌다는 독선으로 인해 이웃종교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갖게 되고, 끝내는 이같이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도 이러한 부정적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종교계는 지구촌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노르웨이에서는 한 젊은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반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면서 77명의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1988년 제주도 원명선원에 안치된 화강암 천불상 가운데 750기에 달하는 불상의 목이 잘려나가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한국 종교계의 이웃종교에 대한 적대 행위도 유별나다. 가톨릭 신학자 한스 킹이“종교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라고 강조했듯이 이웃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인류가 그동안 꿈꿔온 이상세계 실현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종교에 대한 변명>은 종교가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그 반대로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갈등과 분쟁의 상처를 남긴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종교 분파 행위는 결코 신의 뜻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을 선포한 교황 우르반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종교회의에서“이슬람교도들은 기독교도들을 붙잡아서 노예로 팔거나 살해했으며, 교회당을 파괴하고, 제단을 헐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화살 과녁으로 삼았다”라면서 로마 가톨릭 교도들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어“십자군에 참여해서 죽으면 즉각적으로 모든 죄가 사하여지고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선언, 이교도를 토벌하기 위한‘성전(聖戰)’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십자군 전쟁은 결국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오늘날까지 1,400년 동안 반목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똑같이 하나님을 신봉하고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받드는 형제종교이다. 그러나 이들 종교가 앙숙 관계가 된 것은 신에 대한 인식과 교리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한 발짝만 물러서면 세 종교 사이에서 드러난 차이점은 거뜬히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러한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두 종교 모두 공통점보다는 차별성만 부각시키면서 자기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 종파 이기주의와 우월주의가 내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생명과 사랑의 원천이라는 확장된 인식을 가질 때는 이웃종교에 대한 이 같은 미움과 갈등은 사라지게 될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특히 하나님은 기독교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불교의 하나님이자 힌두교의 하나님이며,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자 만유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어느 특정 종교의 신조나 교리 안에 가두고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단’ 예수와 이웃종교에 대한 편견

 

기독교 역사는 정통과 이단의 갈등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전 예수가‘나사렛 이단’으로 몰려 처형된 이후 기독교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수많은‘이단’이 양산됐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교리를 통일하는 과정에서‘삼위일체설’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을 탄압했고,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이단 토벌을 위해 십자군까지 조직, 불과 35년 만에 100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등 그동안 기독교는 자기들과 다른 주장을 펴는 이들은 무조건 척결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틴 루터나 장 칼뱅 역시 종교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면서 당시 기득권층인 로마가톨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그러나 요즘 어느 누구도 예수나 종교 개혁자들을 보고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종교나 개혁자들은 기득권층으로부터 이처럼 이단으로 몰려 모진 박해를 받게 되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 이후에는 이단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종교 개혁이후 개신교는 수천 개의 교파로 갈라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개신교가 이처럼 서로를 이단시하면서 수많은 교파로 난립된 것은 각 교파의 교리나 의식 등에 상호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각 종교가 새로운 종파를 세울 때는 대부분‘신의 뜻’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코 그것은 신의 뜻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각 종교가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우선 포기하고, 진리 안에서 하나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것이 예수나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성인들의 뜻을 받들고 그들의 꿈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길임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이웃종교의 장점을 받아들일 때

 

저자는 종교의 화해와 일치의 모델을 예수에게서 찾고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이교도의 피에 의해 더럽혀진 민족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멸시하고 박해했지만 예수는 그러한 편견을 떨치고 그들을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그는 종교적 차이를 초월해 소외받는 이들까지 감싸 안았던 것이다. 더구나 예수 당시 유대교는 가난하고 병든 것조차 죄와 연결시키는 등 율법을 내세워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압박했다. 결국 유대교는 낡은 전통과 의식에 얽매여 예수의 복음까지 배척했고, 그래서 예수는 유대교 전통이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데 오히려 굴레가 되고 있다고 보고 전면적 개혁을 시도했다.

 

이 책은 이제 모든 종교인은 자신이 속한 종교적 전통을 뛰어넘어 참된 진리의 길을 찾는데 주저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종교에 대한 아량과 공존의 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모든 종교는 생명과 사랑, 존재의 근원인 궁극적 실재는 물론, 궁극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각 종교가 비록 가는 길은 다르지만 하나의 정상에서 만날 수 있으며,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대방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대흐름과도 일치한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미래종교는 △예배 형태는 가정 교회 중심으로 발전하고 △종교는 형식보다는 창조 본연의 인간성 회복에 관심을 기울이며 △종교 간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합종교나 맞춤종교가 인기를 끌게 되고 △지식과 신앙 정보의 공유로 성직자 위주의 신앙 구조가 붕괴되며 △복잡한 교리나 전통, 제도, 의식에서 벗어나 진리 중심의 종교로 재편되고 △생명 중심의 생태종교가 각광을 받게 되며 △설교 위주의 예배보다는 봉사를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데 중점을 두는 실천예배로 바뀌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저자는 머지않아 석가모니가 강조한 것처럼 종교라는‘뗏목’을 버리게 될 때가 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종국에는 모든 종교인이 참된 진리를 찾게 될 때는 삶 자체가 신앙생활로 바뀌면서 참된 부모, 참된 부부, 참된 자녀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초종교시대가 열릴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지은이 소개

 

권 오 문

 

종합일간지 종교 기자로 오랫동안 현장을 취재하면서 수많은 특종기사를 발굴했고, 여러 권의 종교 관련 서적을 펴냈다. 대표적인 종교 관련 저서로는 김수환‧정진석 추기경과 혜암‧서옹 전 조계종 종정 등 종교계 원로들을 인터뷰한 <산다는게 뭔고하니>를 비롯해 <신(神)의 시크릿코드> <성인들에게 길을 묻다> <종교는 없다> <분노하는 신> <예수와 무함마드의 통곡> <한순간을 영원처럼> <섭리사의 무거운 짐을 지고> 등이 있다. 이밖에 <일본천황 한국에 오다> <말 말 말> <디지털문화읽기> <신가족시대 행복만들기> <바다경영,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전환기의 문화인식> <논술 심층면접 한 방에 해결한다> <글쓰기~ 한방에 끝내기!> <생각 나눔, 공감 그리고 행복> 등의 저서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 연락처│전화 010-6213-5875, 이메일 omk2000@gmail.com

 


본문 속으로

 

종교가 갈라질 대로 갈라진 것은 정상적인 것일까. 예수와 석가, 공자, 무함마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볼까.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그것을 원할까. 결코 종교가 갈라진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이 종교 창시자의 가르침이 아니고, 신의 뜻도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가 서로 갈등하고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배경에는 교파나 종파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각 종조들의 눈으로 진리가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요즘처럼 서로 갈등하고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잘 낫다고 이전투구를 벌일 필요도 없고, 이웃종교는 적이 아니라 서로 화해하고 하나될 수 있는 형제라는 것을 깨닫게 됨은 물론이다. <20쪽>

종교 분열은 신의 뜻도, 종조들의 뜻도 아니다. 종교가 분열된 것은 진리와 상관없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종교 분열이 신의 뜻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각 교파는 교리와 의식, 제도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모든 종교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나 석가모니, 더 나아가 신이 그렸던 이상세계이자, 종교 이후의 인간이 꿈꾸는 세계라고 볼 수 있다. <35쪽>

 

종교는 강을 건너는 뗏목에 불과하다. 종교 자체는 배요 뗏목이며 불경이나 성경, 꾸란 등은 뱃길을 밝히는 항해도라고 볼 수 있다. 뗏목은 강을 건너면 버리게 된다. 붓다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간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종교나 경전을 붙들고 있기보다는 그것마저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뗏목에 집착해 그 무거운 것을 지고 먼 길을 가려고 한다면 그것 때문에 가는 길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뗏목에 무슨 비밀스러운 열쇠가 있는 것처럼 과도하게 집착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45쪽>
 
21세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문명 전환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인간 중심주의, 소유 중심주의, 물질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생명 중심주의, 우주 중심주의, 신 중심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가 제 자리를 찾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데 집중할 때가 지금이다. <59쪽>

 

흔히 신앙생활은 등산에 비유한다. 산 정상은 하나이지만 그 정상에 오르는 길은 산세와 풍광이 다른 다양한 길이 있다. 각 종교가 가는 길은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종교 간의 대화는 정상에 오르는 최단거리를 놓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기회가 된다. 서로의 종교 체험을 나누면서 상대방의 장점을 받아들인다면 손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는 종교인이라면 이웃종교에 대한 편견은 있을 수 없다. <71쪽>

 

이제 종교인들은 각 종교가 집적해 놓은 성과들을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겸허한 마음을 회복하고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극복할 때만이 가능하다. 기독교는 불교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불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기독교에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종교가 참된 인간,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하기 위해 수없는 기도와 수행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웃종교의 장점을 받아들인다면 짧은 기간에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도 모든 종교가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69쪽>

 

각 종교는 종조들의 가르침을 효율적으로 펼치기 위해 교리나 신학을 체계화하고 여러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이 고안해낸 방법론이나 제도가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위치를 벗어나 종조의 가르침, 즉 진리보다 더 중요시되면서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도 성인들의 가르침보다는 종교 그 자체가 목적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종교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신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고, 각 종조들이 주창해온 이상적 공동체를 구체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인간의 모든 삶 자체가 신앙생활로 바뀌면서 종교가 필요없는 세상이 도래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되면서 더 이상 종교적 행위가 필요없는 시대가 오게 된다는 것이다. <240쪽>  

 

종교 통합을 위해서는 우선 각종교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이는 모든 종교의 공통점인 ‘비움’을 실천하는 것이다.‘비움’은 노자의 허(虛), 붓다의 공(空)을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에서는 그리스어로 비움을 뜻하는 십자가 정신인‘케노시스’이다. 이슬람교에서는 무(無)를 뜻하는‘파나’사상이 그것이다. 자기를 비워야 나눔이 가능하다. 나눔은 용서 화해, 평화를 추구한다. 그렇게 자기를 비울 때 공동체적 사귐과 통합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251쪽>

 

종교 통합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종교인들이 힘을 모아 통합 종교의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종교가 참여하는 진리 탐구 모임을 활성화하고 공동 예배나 공동 수행 등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궁극적 진리를 탐구하고 그러한 진리를 통해 종파나 교파에서 벗어나 어느 종교나 넘나들 수 있고, 그래서 종교로부터 참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때 종교 통합은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53쪽>

 


목 차

 

책머리에
 
Ⅰ.종교 갈등·이율배반의 역사
 
프롤로그/왜 종교 통합을 말하는가│12
종교분열, 인간의 뜻인가 신의 뜻인가│24
성인들은 종교분열을 어떻게 생각할까│36
종교 갈등과 분열은 왜 오는가│48
종교 편향 정책, 왜 문제인가│60
정통과 이단의 기준은 없다│72
근본주의자와 요나의 착각│84
기독교와 이슬람의 악연 1,400년│96
종교 화해 없인 세계 평화 없다│108
 
Ⅱ.종교 통합의 과제와 전망
 
폐쇄적 교리가 문제다│124
빗나간 축복관, 변질된 종교│134
신은 공평하다│145
인간 본성 회복이 우선이다│158
종교 통합의 모델 예수│170
종교의 본질은 같다│184
종교 통합의 걸림돌은 사람이다│194
예수와 붓다에게 통합의 길을 묻다│206
예수의 눈에 비친 종교│218
미래종교, 어떤 모습일까│229
에필로그/열린 종교, 초종교의 길│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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